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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달라지는 이상기온…
바다얼음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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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중순임에도 두께 1척 남짓한 얼음으로 뒤덮여 배는 전혀 나아갈 수 없다”
1911년 아문센과 같은 시기 아시아인 최초로 남극대륙을 탐험한 일본인 시라세 노부가 당시에 남긴 일기의 한 문장이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지금 남극의 바다얼음은 무섭게 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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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중순 하늘 위에서 바라본 남극의 바다는 새파란 빛을 내비쳤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하얀 바다얼음으로 뒤덮여 있어 바다라고는 상상할 수 없었던 곳이다. 아직 바다얼음이 남아있는 지역은 균열이 생겨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만 같다.

기사이미지 황제펭귄이 먹이사냥을 한 후 줄지어 둥지로 돌아가고 있다.
기사이미지 남극의 기온이 올라가면서 눈이 녹아 고드름이 맺혔다.
기사이미지 갈라진 바다얼음 들이 서로 부딪혀 얼음판 위로 융기한다.

2년 연속 남극을 찾은 김정훈 극지연구소 MPA(Marine Protected Area) 조사 팀 박사는 “하계기간에 남극의 바다얼음이 빠르게 녹는 것을 확인했다”면서 “전년과 달리 해빙 두께가 얇고 면적이 줄면서 헬리콥터를 이용한 조사지 방문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일반적으로 남극의 바다얼음은 겨울과 여름 계절에 따라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다. 11월부터 시작되는 하계기간에 바다얼음이 녹는 일은 지극히 정상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매년 바다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진다고 경고한다.

실제 미국 위스콘신대학 AWS(자동기상관측시스템)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등에 따르면 남극 지역의 기온 변화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지난 2014년 11월 남극 장보고과학기지가 위치한 테라노바 지역의 평균 온도는 영하 8.3도 였지만, 2016년 영하 5.6도로 상승했다가 2017년 다시 영하 9.5도 떨어지고, 2018년 영하 7.1도로 올랐다. 들쑥날쑥하다.

남극 데이비스 평균 최고기온 (출처 호주 기상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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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차 남극 월동대장이자 대기과학을 연구하는 최태진 박사 역시 변화가 심상찮다고 말한다. 최 박사는 “남극 대륙을 양분해서 보면 한 쪽은 녹고, 한 쪽은 오히려 얼어붙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며 “태평양 바다의 수위가 높아져 섬들이 잠길 것이라는 경고는 여전히 지속 중”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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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이 남극 바다얼음의 해빙 시기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바다얼음이 남극 생태계 순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바다얼음 밑에는 크릴, 규조류 등이 사는 데 남극은암치가 얼음 밑 생물들을 먹는다. 남극 상위 포식자 중 하나인 펭귄의 주먹이도 크릴이다.

Øystein Paulsen, Wikipedia /CC B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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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남극 생물들에게 바다얼음은 삶의 터전이나 다름없다. 특히 여름은 남극 바다생물들의 번식기인 만큼 바다얼음의 유무에 따라 새끼들의 생사가 엇갈린다. 갓 태어난 새끼 물범의 경우 일정기간 얼음 위에서 생활하는 데 얼음이 없으면 성장할 수 없다.

기사이미지 황제펭귄과 새끼가 날개짓을 하고 있다.
기사이미지 새끼 황제펭귄들이 서로 모여 먹이사냥을 간 부모를 기다리고 있다.
기사이미지 새끼 펭귄이 돌아오지 않는 어미를 기다리다 생명을 잃었다.

남극 멋쟁이로 통하는 황제펭귄도 물범과 다를 바 없다. 황제펭귄은 다른 펭귄과 달리 별도의 둥지를 짓지 않고 얼음 위에서 알을 낳고 기르는 종이다. 이상 기온 탓에 바다얼음이 빠르게 녹으면 황제펭귄 새끼 역시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

생육기간이 감소한 새끼 황제펭귄은 영양 섭취와 발육면에서 뒤쳐진다. 혹독한 남극의 자연에서 생존할 수 있는 확률이 감소하는 셈이다. 아직까지 펭귄은 멸종위기에 놓인 처지는 아니다. 그러나 머지않아 사진으로만 볼 수 있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바닷새 생태학자인 스테파니 제누비에 우즈홀해양연구소(WHOI) 박사 연구팀은 지난해 기후변화와 펭귄 관련 논문을 통계적으로분석했다. 결과는 황제펭귄의 멸종이다. 지구 온도가 2도 상승하면 바다얼음이 3배 감소하게 되고 황제펭귄 집단의 3분의 1이 사라질 수 있다.

연구팀은 미국국립기상연구소(NCAR)가 개발한 기후변화 모델을 이용해 해빙의 변화를 컴퓨터 시나리오로 예측했으며 해빙 서식지 변화에 따라 펭귄의 생식 능력과 사망률을 계산, 펭귄 개체수를 산정했다.

세계 각 국가가 화석 연료 사용 제한 등 저감 조치를 취하지 않을 경우, 지구 기온은 5~6도 상승할 것으로 예측됐다. 이 때 황제펭귄의 86%가 사라질 수 있다는 분석 결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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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박사는 “지구 온난화 등과 같은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장기적인 조사와 모니터링이 필요하다”며 “남극의 자연 환경과 생태계의 변화에 대해 면밀히 관찰해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게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인터뷰 "남극 연구의 선구자 김예동 박사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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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극 연구는 곧 그 나라의 힘"
김예동 박사
김예동
극지연구소장
"남극 연구는 곧 그 나라의 힘"
연평균 기온 영하 20도의 남극대륙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김예동(사진) 초대 극지연구소장이 대표적이다. 지구물리학자인 김 박사는 1987년 한국해양과학기술원 근무를 시작으로 1995년 남극세종과학기지 월동대장, 극지연구센터장, 2004년 초대 극지연구소장을 역임했다. 그가 2019년 다시 남극을 찾았다.
김 박사가 남극을 다시 찾은 이유는 우리나라의 첫 내륙기지 건설사업을 위해서다. 현재 극지연구소의 ‘K-루트사업단’은 장보고과학기지를 시작으로 남극점을 향한 육상로를 개척하고 있다. 그는 “이제 우리나라는 남극 내륙기지 건설이라는 목표에 가까이 가고 있다”며 “K루트 사업단이 2~3년 내 내륙 1300km 목표지점에 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Q. 해외 강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아직 극지연구에 있어 걸음마 단계다.
“남극 연구는 한 나라의 국력을 상징한다. 그 나라의 소득 규모 순위와 남극에 기지를 세운 나라만 비교해보면 거의 일치한다. 최근 4년 동안 대륙기지건설단장으로서 남극장보고과학기지를 만드는 데 힘써왔다. 이제는 남극점과 가까운 심장부에 내륙기지를 세울 차례다.
특히 남극 내륙기지는 현 극지 연구의 최정점이다. 내륙기지는 기지 아래 빙저호를 찾아내는 연구를 중심으로 하는 데 국가간에 가장 깊은 곳에서 오래된 얼음을 찾아내는 경쟁이 한창이다. 세계적으로도 프랑스 중심의 유럽팀과 일본팀 등이 빙저호 탐사에 나서고 있다. 빙저호 탐사야 말로 극지 연구 분야에서 가장 뜨거운 감자다”
Q. 빙저호 탐사 우리나라 경쟁력 있나
“과학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가장 최첨단을 지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빙저호 탐사는 우리가 비록 늦지만 충분히 경쟁할 수 있는 분야이기도 하다. 얼음 밑에 숨어 있는 빙저호를 찾을 때 탄성파를 이용한다. 이 탄성파는 국내에서 싱크홀을 발견하는 데 쓰이기도 하는 방법이다.
빙저호는 남극 대륙 얼음 3000m 이하에 존재하는 호수다. 이 호수 바닥의 퇴적물을 연구하면 남극의 과거와 지구의 기원을 알 수 있다. 이탈리아는 남극 내륙기지 ‘콩코르디아’가 있는 돔씨 지역에서 3800m 지하 시추에 성공했다. 이를 통해 86만년 동안 지구의 기온 변화, 대기 중 이산화탄소 변화 등을 밝혀낼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연구 깊이와 수준이 예전과 달리 높아졌기 때문에 이제는 극지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도전에 나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모든 일에는 어려움이 따르기 마련이다
“우리가 넘어야 할 벽은 경험이다. 극지에서는 실제로 현장에서 해보지 않고 그냥 얻어지는 것이 없다. 다른 나라에서 가르쳐 주는 것도 아니고 책을 봐서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언젠가 누군가는 반드시 먼저 해봐야 한다.
장비 구현 등을 포함한 미흡한 연구 인프라가 아쉽다. 현재 정부출연연구소 등과 함께 협력을 하고 있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해봐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난관에 쉽게 부딪힌다. 대기업은 관심이 없고 중소기업과 협력은 어렵다. 연구소 산업화가 방법이지만 쉽지 않다.”
Q. 우리나라 극지연구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이 있다면
“개인적으로 극지 연구를 하겠다고 뛰어들면서 항상 남들이 하지 않는 분야를 해야한다는 것을 줄곧 다짐해 왔다. 한 번 시작을 했으면 끝까지 끝장을 보겠다는 마음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과학이 편하고 쉬운 방향으로만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로 극지 연구는 점점 고립된 학문이 되는 것 같다.
다른 분야에서도 극지에서 접근할 만한 영역이 분명히 있다. 언제부터인가 각 분야간 굉장히 담이 쌓였다. 그러나 지금 극지 연구자들은 많은 과학자들이 이 곳에서 더 함께 연구하기를 바란다. 현재 베트남, 말레이시아 연구원들에게 극지 연구 기회도 제공하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도 우리가 가진 과학 기술의 힘을 보여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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