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기 타임캡슐에 담다

난개발의 대명사에서 스카이라인 뽐내는 도시로. 부산은 다시 뛴다

2020.06.16 유한빛 기자

고개를 한껏 젖혀 올려다봐도 꼭대기가 잘 보이지 않는 신축 건물. 상가층은 분양을 시작하지 않아 아직 썰렁하지만, 아파트층은 3분의 2 가까이 입주를 마친 상태다. 집안으로 들어서면 창밖으로 푸른 바다와 해수욕장 풍경이 펼쳐지는 초고층 주상복합, 부산 해운대 엘시티의 2020년 6월 현재 모습이다.

전망대에서 부산을 내려다보면 저층 주택가들 사이에 고층 건물 군락이 보인다. 해운대구에 지어진 신도시 개념인 센텀시티와 마린시티다. 구릉지에 낡은 집들이 다닥다닥 모인 난개발의 대명사였던 부산은 최근 10년 사이에 하나둘씩 들어선 초고층 건물을 앞세워 세련된 스카이라인을 뽐내는 도시로 변신 중이다. 스카이라인에 변화가 생기는 것은 비단 신도시 지구만이 아니다. 구도심과 부산 구항 일대에도 초고층 주상복합과 아파트, 상업시설이 잇따라 들어설 예정이다.

40층·80층·100층···부산 스카이라인 높이는 고층 신도시들

KTX부산역에서 내려 자동차로 30여분. 부산역 근처 구도심에서 멀어질수록 점차 시야에 들어오는 건물 높이가 높아진다. 해운대구로 들어서면 마천루와 대교가 어우러져 미국 샌프란시스코나 홍콩을 연상시키는 전경이 펼쳐진다. 신도시와 이곳을 채운 고층 건물들이 부산의 스카이라인을 바꾼 덕분이다.

새로 등장한 부산의 얼굴은 2019년 12월 입주를 시작한 해운대구 중동 엘시티다. 호텔 등 상업시설 중심인 랜드마크타워와 아파트인 ‘엘시티 더샵’ 2개동 등 총 3개동으로 구성됐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에 이어 한국에서 두 번째로 높은 엘시티 랜드마크타워는 101층(411m)으로, 부산에서 유일하게 100층 이상인 건물이다. 최고 85층인 엘시티 더샵 아파트는 국내 주거용 건물들 중에서 가장 높다.

엘시티에서 불과 2km 거리에는 동부산권에서 가장 화려한 스카이라인을 자랑하는 신(新)주거지구인 마린시티가 있다. 최고 80층인 ‘해운대 두산위브 더제니스(301m)’를 위시한 초고층 아파트가 밀집해 있다. 최고 72층인 ‘해운대 아이파크(292m)’와 지난 2019년 10월 입주를 시작한 ‘마린시티 자이’ 등이다.

마린시티 부지는 본래 바다였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요트 경기장을 짓기 위해 수영만 인근 바다를 매립해 조성한 땅이다. 이후 대우그룹이 이곳에 초고층 건물을 지으려 했지만, 외환위기로 대우그룹이 공중분해되면서 사업 계획도 백지가 됐다.

20년 가까이 놀리던 땅에 변화가 생긴 건 2000년대 초반이다. 관광호텔용으로만 보던 이 지역을 고급 주거지역으로 활용하겠다는 발상의 전환이 이뤄진 것. 2001년 입주한 ‘현대 카멜리아’를 시작으로 ‘해운대 현대 하이페리온’, ‘더샵 아델리스’ 등 30~40층대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020년 현재 마린시티 일대는 부산의 동별 소득순위 1위인 부촌으로 자리매김했다.

부산 택지개발사업의 마중물 격에 해당하는 곳이 바로 해운대구 우동, 재송동 일대에 조성된 센텀시티다. 센텀시티는 2000년 이름을 바꿔달기 전까지 ‘부산정보단지’로 계획된 혁신도시다. 옛 수영비행장의 기능을 김해공항으로 이전하고 한동안 놀리던 부지를 개발했다. 산업과 주거, 상업기능을 골고루 갖춘 신도시다.

1995년 건설사업을 추진했다가 외환위기로 좌초됐던 부산국제종합전시장 벡스코(BEXCO)가 2001년 개관했고 영화진흥위원회, 영상물등급관리위원회, 부산국제영화제의 영화의전당 등이 센텀시티로 이전했다. 백화점 중에서 세계 최대 면적을 자랑하는 신세계백화점 센텀시티점도 들어섰다. 애초 산업지구로 계획한 지역답게 센텀시티에는 서울 구로디지털단지처럼 중소형 지식기반 기업들이 대거 입주하기도 했다.

박람회장인 벡스코와 센텀시티 쇼핑가는 부산이 여름 한철 관광지에서 사계절 내내 비즈니스 수요와 관광객이 찾는 도시로 도약하는데도 보탬이 됐다. 이같은 인식의 변화는 부산에 마천루를 건설하는 사업의 전망을 개선하는 순환 효과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전쟁이 만든 부산 구도심, 재개발사업 시동

부산 구도심으로 돌아가면 저층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선 노후한 주거 구역이 신축 건물들 사이에 혼재된 풍경이 쉽게 보인다. 부산 자체가 도시계획이 미비한 상태에서 급성장한 도시이기 때문이다.

부산의 도심은 한국전쟁으로 수도권을 떠난 피난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빈 땅에 집을 먼저 세우고 도로를 연결하면서 확장됐다. 특히 부산역 주변 구도심인 중·서·동구와 영도구, 사하구, 부산진구 등의 수십년에 걸쳐 지어올린 낡은 저층 주택가를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부산이 난개발로 악명을 얻은 이유다.

부산 구도심

부산 부산진구의 노후주택가 /이신태PD

부산 구도심

낡은 주택과 상점이 혼재돼 있다 /이신태PD

부산 구도심

재개발 사업지구 골목에 빌라 매매 광고가 붙어 있다 /유한빛 기자

2020년 6월 현재 부산에는 168개 주택 재개발·재건축 사업장(소규모 재건축 포함)이 정비구역지정 이후 단계를 밟고 있다. 동구·남구·북구·영도구·동래구·사하구 등 구도심 전역에 걸쳐 15~49층짜리 고층 주택들이 새로 지어지는 것. 부산진구 시민공원주변재정비촉진지구의 경우 최고 60층 주택이 들어설 계획이다. 현재 가구수를 확정한 단지만 합산해도 약 6만5000가구가 공급될 예정이다.

도로 등 기반시설부터 완전히 새로 짓는 재개발뿐만 아니라 낡은 아파트나 빌라를 재건축하는 사업도 부산에서는 전망이 밝아진 상태다. 정부가 지난 2019년 11월 동래‧수영‧해운대구를 조정대상에서 해제하면서, 부산 전역이 규제지역에서 풀렸다. 그만큼 재개발·재건축 등 도시정비사업을 추진할 동력이 생겼다.

부산의 스카이라인은 변신 중

카드를 뒤집어 짝을 맞춰보세요

개발 호재도 속속 발표되고 있다. 2020년 6월 부산 범천철도차량정비단 이전사업이 정부의 예비타당성조사를 통과했다. 1904년 지어진 이 철도차량정비단은 부산진구 범천2동과 부전2동 경계에 남북으로 길게 자리잡았다. 이 정비단 부지에 막혀 서면상권이 서쪽으로 더 확장되지 못하고 도심이 단절된다는 지적이 꾸준했다. 정부와 코레일은 오는 2027년까지 정비단을 부산 강서구 송정동 부산신항역 부근으로 옮기고, 면적 24만1000㎡인 이 부지의 토양을 정화해 2028년부터 개발할 계획이다.

항구도시 부산의 재도약,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

부산시 구도심의 중심인 KTX부산역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인 부산항 일대는 2020년 6월 현재 공사가 한창이다. 펜스로 둘러싸인 공사장으로 레미콘이며 건설장비가 쉴새 없이 드나들고 있다. 부산시의 역점사업 중 하나인 부산 북항(부산 구항) 재개발 사업지다.

10년 후 부산, 어떤 변화가 기대될까?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 담당자와 가상의 대화를 나눠보자!

재개발 사업 담당자

  • 10년 뒤에 크게 달라질 곳이 또 있나요?
  • 부산시 중구와 동구에 걸친 북항 일대입니다.
  • 어떤 변화가 예정돼 있나요?
  • 2008년부터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이 진행 중입니다.
  • 구항인 부산항 일대를 복합문화상업시설로 다시 개발하는 겁니다.
  • 왜 추진하는 건가요?
  • 부산 신항이 개장하면서 구항인 북항의 기능이 줄었고 통합여객터미널을 마련할 필요성이 생겼습니다. 이 지역 주민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도 늘었어요.
  • 기대되는 경제·사회적인 효과는요?
  • 예상 경제적 파급 효과는 31조5000억원이고, 12만명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궁극적으로 부산시를 국제 해양관광 거점으로 육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그래픽=이승연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은 중구, 동구 일대의 노후한 항만시설과 부지를 재개발하고 인근 구도심의 주거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업이다. 이 일대를 복합문화·상업·국제업무지구로 개발해 부산시를 국제해양산업·관광거점으로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1단계 사업은 연안·국제여객부두와 중앙부두, 1~4부두 부지 약 153만6418㎡에 문화·상업시설을 조성하는 것이다.

1990년대부터 거론됐던 북항 재개발 사업이 2020년 현재도 끝나지 않은 데는 경제적인 문제가 컸다. 1997년 닥친 외환위기와 부산의 경기 침체로 좀처럼 사업을 시작하지 못했다. 재개발 기본계획을 고시하고 가까스로 사업을 추진하려던 상황에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표류하던 사업에 다시 탄력이 붙은 시기는 2010년대 들어서다. 부지조성공사를 시작했고 관광 수요를 흡수하기 위한 국제여객터미널 건립도 첫삽을 떴다. 부산 북항 부두를 간척해 조성한 부지는 민간 사업자에 매각해 사업비에 보탰다.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 1단계 그래픽=송윤혜

국제여객터미널이 준공된 이듬해인 2016년, 부산시는 부산항 개항 140주년에 맞춰 북항과 남구, 영도구 일대를 연결해 개발하는 계획인 ‘북항 그랜드 마스터플랜’을 발표했다. 서울 여의도 면적의 절반 정도인 1단계 사업지는 오는 2022년 준공을 목표로 막판 스퍼트를 올리고 있다. 설계 변경 문제로 속도를 내지 못했던 부산 오페라하우스도 같은 시기에 완공하는 게 목표다. 협성건설이 1단계 부지 D-1블럭에 짓는 최고 61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인 협성마리나G7은 오는 2021년 준공을 앞두고 있다.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

사진을 지워서 부산 북항 지역의 변화를 비교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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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단계 재개발 사업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부산시는 다음 단계에 착수했다. 북항 자성대부두 등을 재개발하는 2단계 사업이다. 2020년 5월 사업시행자로 부산항만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LH)·부산도시공사(BMC)·한국철도공사(코레일)로 구성된 공공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북항 재개발 2단계 사업은 추산 공사비만 2조5000억원으로, 현재 부산시가 유치에 나선 2030년 월드엑스포에 맞춰 1차 사업지를 완성하는 게 목표다. 국제교류·도심복합지구로 기획한 2단계 사업지에는 크루즈 업무지원센터, 해양비즈니스센터, 숙박시설, 중소기업특화 면세점 등이 들어설 예정이다. 부산 북항 재개발 사업이 완공되면 부산항 일대에도 초고층 건물들이 빚어낸 스카이라인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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