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여기 타임캡슐에 담다

균형발전 실험장 세종시의 등장에 공무원의 24시는 짧아졌다

2020.05.29 백윤미 기자

KTX와 함께 시작되는 세종시의 월요일

2020년 5월 25일 월요일 아침 KTX오송역. 6시 50분 서울역을 떠난 서대전행 KTX가 출발한지 50여분 만에 오송역에 도착했다. 고개를 꺾거나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졸던 승객들이 피곤한 얼굴로 가방을 챙기며 내릴 채비를 했다. 검정색, 감색, 회색 정장 차림에 마스크를 쓰고 백팩을 멘 남성 승객들이 우르르 내렸다. 이들 사이에는 흰 블라우스에 정장 치마나 바지를 차려 입고 역시 백팩을 멘 여성 승객도 더러 있었다. 연령대는 흰 머리 지긋한 사람부터 20·30대로 보이는 젊은이까지 다양했다. 정부세종청사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이다.

세종시로 향하는 KTX 객실

2020년 5월 25일 오전 6시 50분 서울역에서 출발한 서대전행 KTX 1호차 객실이 승객으로 가득 차 있다 /백윤미 기자

오송역 7번 출구로 나간 이들이 곧바로 해야 할 일은 ‘줄서기’. 세종청사로 향하는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먼저 온 수십 명이 모두 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이날도 어김없이 KTX를 타고 세종시로 출근한 한 경제부처 과장은 피곤한 얼굴로 “혼자 살다 기러기 생활에 지쳐서 서울에서 통근한 지 6개월 째인데, 이러다 병 걸릴 것 같다”고 말했다.

세종시 통근 공무원들의 아침 출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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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틀
택시
BRT
BRT
자전거

버스를 타고 비닐하우스와 공장, 농지 등 광경이 펼쳐지는 도로를 25분쯤 달리면 사방에 정부 부처들의 이름이 적힌 낮고 길다란 회색 건물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20개 중앙부처와 15개 산하기관 등 모두 35개 정부 기관 직원들의 일터 세종청사다.

▲20개 중앙부처와 15개 소속기관 등 35개 기관이 입주해있는 정부세종청사 전경 /최효정 기자

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황무지였던 이곳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시기는 2002년, 제16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당시 노무현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면서다. 정부 대전청사 건립 이후에도 수도권 과밀화로 인한 부작용과 지역 간 불균형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았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경제 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되면서 생긴 주택난과 인구 과밀화 같은 부작용을 완화하고 국토균형발전을 이루기 위한 대안으로 정부의 행정 기능을 지방으로 이전하겠다는 구상이다. 이 시기 정부는 지방에 혁신도시들을 건설해 공기업과 공공기관들을 이전시키기도 했다.

세종특별자치시 연혁

연도를 눌러서 세종시의 변천사를 확인해보세요
  • 2002 ~ 2004
  • 2005 ~ 2009
  • 2010 ~ 2016
  • 2002.12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 후보 신행정수도 건설 관련 특별 기자회견

  • 2003.06

    노무현 대통령 국가균형발전을 위한 공공기관 지방이전 추진 방침 발표

  • 2004.01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공포

  • 2004.10

    헌법재판소,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 위헌 판결

  • 2005.01

    신행정수도후속대책 특별위원회, '행정중심복합도시'추진 발표

  • 2006.12

    행정중심복합도시 명칭 세종으로 확정

  • 2008.12

    정부세종청사 1단계 1구역 착공

  • 2009.09

    정운찬 총리, 세종시 수정안 추진 발표

  • 2010.10

    KTX 오송역 개통

  • 2010.12

    세종특별자치시 설치 등에 관한 특별법 공포

  • 2012.07

    세종특별자치시 출범

  • 2013.04

    BRT 정식운행 시작

  • 2013.12

    정부세종청사 3단계 이전 마무리 (법제처, 국민권익위원회, 국세청, 소방방재청)

  • 2016.09

    세종시 인구 24만명 돌파

지난 2010년 민간기관 이전을 시작으로 세종은 어느덧 행정중심지로 자리잡았다. 전국 각지에서 중앙부처 사무를 보기 위해 세종을 방문한다. 민원인을 비롯해 지역 사업을 예산에 반영하기 위해 사업설명회를 하러 오는 지자체 공무원, 유관기관 관계자 등이 수시로 세종청사를 드나든다. 반대로 세종시 공무원들도 국회 일정이나 회의 등으로 서울과 세종 사이를 일주일에 2~3번씩 오가는 진풍경이 연출된다.

정부세종청사 인근 카페

정부세종청사에 근무하는 공무원들이 점심시간에 스타벅스 세종청사점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백윤미 기자

이 때문에 세종시 공무원들은 출근 방식으로도 크게 세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서울과 수도권에서 매일 세종시를 왔다갔다 하는 ‘출퇴근족’과 가족은 타 지역에 두고 본인만 세종시에 머무는 ‘기러기족’, 전 가족이 세종시로 이주한 ‘이주족’이다. 세종청사 건립 초반에는 출퇴근족이 많았지만, 현재는 세종시에 거주하는 공무원이 압도적으로 많다.

세종시의 신축 아파트 단지들

2020년 4월 세종특별자치시 아파트 단지 전경. 2020년에도 5600여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신현종 기자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세종권 이전 중앙부처 공무원 거주 현황’(2018년 8월 기준)에 따르면 세종권 공무원 1만2934명 중 세종시 인근 거주자는 전체 90%인 1만1522명에 달한다. 25일 세종청사 출근길에 만난 기획재정부의 한 공무원은 “5년 전까지만 해도 국회에 왔다갔다 할 일이 많아 동료들도 세종으로 이사를 꺼렸는데 요즘엔 진천 연수원에서부터 만나 세종에서 만나 가정을 꾸리는 ‘사내커플’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세종시 인구 추이

출처 : 세종특별자치시

주거와 상권, 교육시설 같은 기반시설도 속속 갖춰지면서 공무원 인구 증가와 함께 세종시 인구도 점점 늘고 있다. 2010년 약 11만명이던 인구는 가장 최근 집계인 2019년 10월 말 기준 34만명까지 늘었다. 아파트 입주물량도 2014년 이후 매년 5000가구 이상 꾸준히 공급되고 있다. 세종국제고와 세종과학예술영재고 등 특목고가 들어서면서 서울 강남학군과 견주는 ‘세종 8학군’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학군으로도 각광받는 지역이 됐다.

'세종 8학군' 별칭 붙은 세종시

세종시 아름동에 있는 세종과학예술영재고와 세종국제고는 세종시 주요 학군을 형성한다 /신현종 기자

법률 개정 등을 위해 국회와 조율할 일이 많은 업무 특성상, 세종으로 거처를 옮긴 공무원들조차 서울을 오갈 수밖에 없는 상황도 문제로 지적된다. 조선비즈가 2020년 2월 기획재정부 등 7개 경제부처 과장(서기관)급 이상 공무원 1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78명이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정책 역량이 ‘현저히 또는 다소 떨어졌다’고 답했다. 10명 중 8명 꼴로 세종청사에서 근무하며 업무 효율성이 낮아졌다고 답한 셈이다.

세종시 이전으로 정책 역량이 떨어진 이유로는 ‘산업계 관계자 등 시장과 소통 부족(43명·53.8%)’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비효율적인 업무 방식에서 느끼는 피로감 누적과 세종시에서 일하면서 느끼는 공무원들의 고립감은 앞으로도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로 남아 있다.

행정수도 세종시에 붙은 오명 ‘전국구 부동산 투기지역’

2020년 현재, 세종시 부동산시장에는 서울과 맞먹는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세종자치시가 행정수도로 공식 출범한 2012년부터 이 지역의 집값은 매섭게 올랐다. 전국 집값이 들썩이던 2017년, 정부는 세종시 부동산시장이 과열됐다고 판단하고 투기지구·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지정이란 부동산 ‘3중 규제’를 적용했다.

세종시 집값 연간 상승률

2020년은 5월 4일까지 누적분
출처 : 부동산114

그럼에도 부동산시장 상승세는 요지부동이다. 한국감정원이 집계한 2020년 3월 세종시 아파트값은 10.07% 올랐다. 코로나19의 여파로 부동산 매매가 위축된 가운데서도 전국에서 가장 높은 집값 상승률을 기록했다.

부동산 시장 과열에는 공무원 특별공급 아파트가 원인이 됐다는 비판도 있다. 정부는 정부세종청사를 이전하면서 2010년부터 세종시에서 분양하는 아파트 2채 중 1채를 공무원 등 유관기관 직원에게 우선 공급했다. 유주택자는 제외되는 다른 특별공급물량과 달리 공무원에게 특별공급하는 물량은 주택을 소유하고 있더라도 청약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이미 서울 등 다른 지역에 집을 보유한 공무원들이 세종시에 아파트를 분양받고 이사할 수 있도록 배려하겠다는 취지였다.

문제는 이렇게 공무원·공공기관 직원에게 특별공급한 아파트 중 상당수가 매매되거나 전·월세 등 임대물량으로 나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송언석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제출받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세종시에서 이전기관 종사자가 특별공급으로 분양받은 아파트 2만5406가구 중 23.4%인 5943가구가 매매나 임대 거래됐다. 전세가 1851가구(7.3%)로 가장 많았고 분양권 전매 177가구(7%), 매매 1655가구(6.5%), 월세 660가구(2.6%) 등 순이었다. 정부 청사를 이전하면서 직원들이 세종시에 정착할 수 있도록 배려한 정책이 부동산 투기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세종시 입주물향 추이 그래픽=김란희

빈번히 연기되고 바뀌는 개발 계획도 세종시의 부동산시장 질서를 흔들어놓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2020년 4월 현재, 세종시 소담동 법조타운 지역의 ‘법조타운B’ 건물 바깥벽에는 최저가로 임대해준다는 플래카드가 붙어 있다. 1층에는 상점 몇몇이 입점했지만, 2~7층 상가 공간 60여실 중에서 임대가 이뤄진 곳은 단 4실에 불과했다. 세종시 전체로도 높은 상가 공실률을 기록하고 있다. 2019년 4분기 집계 기준으로 세종시 중대형 상가의 공실률은 16.2%로, 전국 최고다. 전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도시지만 여전히 미완인 도시, 세종시의 개발은 2020년에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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