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기업, ‘차세대 음극재’ 확보 위한 짝짓기 경쟁 치열

송기영 기자
입력 : 2021. 07. 29 11:00
국내 전기차 배터리 3사와 ‘실리콘 음극재’ 생산 기업 간에 협업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실리콘 음극재는 기존 전기차 배터리에 사용하는 흑연 음극재에 비해 주행 거리를 향상하고 충전시간은 단축할 수 있어 차세대 배터리 소재로 꼽힌다. 전기차 업체들이 실리콘 음극재에 높은 관심을 보이면서 시장을 선점하려는 국내 배터리 기업의 경쟁이 치열하다.
29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머티리얼즈(036490)는 미국 음극 소재 기업 그룹14테크놀로지(그룹 14)와 합작사를 설립해 실리콘 음극재를 생산할 계획이다. SK머티리얼즈는 이 합작사에 약 604억원을 투자한다. 그룹14는 2015년 설립된 배터리 소재사로 실리콘 음극재 관련 기술 및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합작사에서 생산하는 실리콘 음극재는 대부분 SK이노베이션(096770)에 납품할 것으로 전망된다.

경북 영주에 있는 SK머티리얼즈 공장.

LG에너지솔루션은 대주전자재료(078600), 삼성SDI(006400)한솔케미칼(014680)과 각각 실리콘 음극재 협업을 진행하고 있다. 대주전자재료는 국내 유일 실리콘 음극재 생산업체다. 해외 업체 제품은 품질이 낮아 대주전자가 글로벌 실리콘 음극재 시장의 선두주자로 평가받는다.
대주전자 제품은 LG에너지솔루션이 포르쉐 타이칸에 적용한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에 탑재됐다. 포르쉐 타이칸은 차값만 2억원에 달하는 최고급 전기차다. 대주전자 실리콘 음극재는 생산량이 많지 않아 최고급 전기차 배터리에만 적용하고 있다. 대주전자는 월 40톤(t)에 달하는 실리콘 음극재 생산능력을 내년까지 150t으로 확대할 방침이다.
삼성SDI는 지난해부터 한솔케미칼과 실리콘 음극재를 개발하고 있다. 양사는 내년부터 제품 양산에 들어갈 계획이다. 한솔케미칼은 배터리 내부 접착제로 쓰이는 바인더 사업을 보유하고 있지만, 배터리 핵심 소재 사업에 진출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한솔케미칼은 삼성으로부터 기술을 제공받아 실리콘 음극재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삼성SDI와 한솔케미칼의 협업은 두 기업 오너의 특수관계가 작용했다는 것이 재계의 중론이다. 한솔케미칼의 조연주 사장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장녀인 고 이인희 전 한솔그룹 고문의 장손녀로 범삼성가 4세다. 삼성과 한솔은 오랜 기간 여러 사업 분야에서 협업하고 있다. 이런 관계가 전기차 배터리 공동 개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재계에서 나온다.

포르쉐 타이칸 4S를 충전하는 모습. 이 차에는 대주전자재료의 실리콘 음극재가 적용된 LG에너지솔루션 배터리가 탑재됐다.

음극재는 양극재에서 나온 리튬이온을 저장한다. 지금은 주로 흑연 계열 음극재를 사용하는데 이를 실리콘으로 대체하면 배터리 용량을 4배 가량 늘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리콘 음극재는 리튬이온을 받아들이는 속도도 빨라 충전 시간이 단축된다. 실리콘 음극재를 적용하면 기존 배터리보다 가볍고 크기도 작게 만들 수 있어 모바일과 테블릿, 드론 등에도 활용할 수 있다.
실리콘 음극재 시장은 이제 막 시작이라는 점에서 성장성이 크다. 시장조사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실리콘 음극재 수요는 2025년까지 연평균 70%의 성장이 예상된다. 전체 음극 활물질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지난해 3%에서 2025년에는 11%로 급증할 전망이다. 이에 K-배터리 3사가 국내외 기업들과 손잡고 실리콘 음극재 확보에 나선 것이다.
SNE리서치 관계자는 “높은 에너지밀도를 바탕으로 충분한 전기차 주행거리를 확보하려는 현 시점에서 실리콘 음극재의 전지 내 사용 비중은 점차 높아질 것”이라며 “이런 움직임에 대비해 기존 흑연계 음극재를 생산하는 업체들도 실리콘 음극재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