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기지 4만명에 삼성까지 품은 평택, 지도는 매일 바뀐다

2020.10.30 유한빛 기자

2020년 10월 초 경부선 평택역에서 자동차로 20여분을 달려 도착한 평택시 고덕면. 잔디가 노랗게 물들기 시작한 벌판이 공사장 펜스로 둘러싸여 있었다. 인도도, 행인도 없었다. 한 공사장에서는 타워크레인이 건물 골조를 올리는 중이었고, 바로 옆 구역에서는 아파트 건설 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든 모습이었다. 인근 도로에는 공사 자재를 실은 덤프 트럭들이 1분 사이에도 두세 대씩 지나갔다. 평택 고덕국제신도시 지구의 모습이다.

다시 차로 10분을 달려 도착한 고덕면 첨단대로와 삼성로가 교차하는 사거리는 작업복을 입거나 출입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로 인산인해였다. 횡단보도의 신호가 바뀔 때마다 수십 명이 도로를 건너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시간을 맞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의 풍경이다.

경기도 남단 도시인 평택은 최근 10년 동안 가장 빠르게 성장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2011년 42만명이던 인구는 2020년 8월 말 기준 52만7000명으로 늘었다. 평택의 아파트 미분양률은 0%대다. 이 같은 변화의 주된 요인으로는 삼성전자의 반도체 공장과 주한미군의 평택기지 이전이 꼽힌다. 고덕국제화도시와 브레인시티 첨단산업단지 조성 사업 등 굵직한 개발사업들도 진행 중이다.

삼성전자가 선택한 평택, 첨단산업도시로 변신할까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를 나선 근로자들은 왕복 8차선인 첨단대로를 건너 신축 상점가로 흩어졌다. 대로변에는 분양 플래카드가 내걸린 지식산업센터와 주상복합 오피스텔 건물들이 자리를 잡았다. 골목으로 이동하면 4~5층짜리 신축 상가주택의 1층에는 편의점과 카페, 식당이 문을 열었다. 길을 따라 신축 빌라들이 반듯하게 늘어섰고, 곳곳에서 새 건물을 올리는 공사가 한창이다.

2020년 10월 평일 점심시간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앞 전경 /유한빛 기자

삼성전자는 지난 2015년부터 평택 캠퍼스를 조성하기 시작했다. 전체 면적만 289만㎡로, 수원캠퍼스의 2배가 넘는 규모다. 지난 2017년부터 반도체 양산을 시작한 1라인에 이어 2라인이 올해 8월부터 제품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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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삼성전자의 반도체 생산설비 1라인 외경 /삼성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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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설 중인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2라인이 준공된 평택캠퍼스 조감도 /삼성전자 제공

문장을 눌러서 관련기사를 확인해 보세요 현재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에는 평일 기준으로 임직원 5000여명이 근무한다. 앞서 1라인 가동시에는 하루 평균 건설인력 1만2000명이, 2라인 가동에는 협력사와 건설직 근로자 약 3만명이 투입됐다고 삼성전자는 밝혔다.

경제효과도 그만큼 클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1라인에 30조원, 2라인에 30조원을 투자하는 등 모두 6개 반도체 생산라인을 지을 계획이다. 3라인은 현재 건축허가 심의단계로, 승인을 받는대로 곧바로 착공할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평택캠퍼스의 직간접적인 생산유발효과와 고용유발효과를 각각 163조원, 44만명으로 추산한다.

평택시의 법인세 납부 1위 기업은 지난 2018년부터 삼성전자로 바뀌었다. 이전 최다 납부기업인 한국가스공사를 밀어냈다. 지난 2019년 삼성전자가 납부한 금액만 915억원이다.

최근 10년 평택시 인구 추이

자료: 평택시청, 2020년은 9월 말 기준

이 때문에 삼성전자를 겨냥한 상가와 오피스텔이 꾸준히 들어서는 중이다. 특히 1공장이 준공된 이후로 삼성전자 주변으로 신축 오피스텔과 상가주택, 빌라 등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 상권이 활성화된 구역은 그리 넓지 않다. 정문에서 한 블록 떨어진 고덕국제대로로 이동하면 도로변에 접한 고층 오피스텔 대부분이 아직 공실이다. 그나마 몇몇 건물의 1층에 부동산중개업소가 들어섰을 뿐이다.

인근 한 부동산중개업소 관계자는 “최근 오피스텔을 주택 수에 반영하게끔 관련 법이 개정되면서 문의는 간간히 있어도 선뜻 오피스텔을 분양받거나 매수하지 못하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신도시급 주한미군 기지 ‘평택 시대’ 본격화···‘제2의 이태원’ 기대하지만

평일 오후 평택시 팽성읍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 2번 게이트 앞에는 영문 간판이 주를 이루는 상점 거리가 있다. ‘안정리 로데오거리’다. 메뉴판에 가격이 미국 달러화로 표기된 케밥과 햄버거 식당들 사이에 영어식 이름을 붙인 치과와 이발소, 부동산중개업소, 환전소가 모여 있다. 군복을 입은 미군이 드문드문 거리를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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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정리 로데오거리

2020년 10월, 평택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 근처 상점가는 한산한 모습이다. /유한빛 기자

안정리 로데오거리

2020년 10월, 평택 주한미군 캠프 험프리스 근처 상점가는 한산한 모습이다. /유한빛 기자

1919년 일제강점기 일본군의 비행장으로 조성된 이 지역에 주한미군이 주둔하게 된 계기는 1950년 발발한 한국전쟁이다. 캠프 험프리스(Humphreys)라는 지금의 이름은 1961년, 인근에서 헬리콥터 사고로 순직한 군인을 기리기 위해 바꿔 달았다.

전국에 흩어진 주한미군을 대한민국 중부와 남부 2개의 거점에 재배치하는 계획은 지난 2003년부터 추진됐다. 평택이 중부 거점으로 결정된 데는 지리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무역항인 평택항과 평택시 송탄동 일대에 자리잡은 오산 공군기지가 있어, 미 해군과 공군 병력을 신속하게 집결할 수 있는 위치이기 때문이다.

평택 주한미군기지 캠프 험프리스의 역사

시대순으로 험프리스의 역사를 확인해보세요.
1919~1945년
1950년
1961년
2003년
2007년
2017년
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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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1945년

일본군 비행장으로 사용

1950년

미국 육군 주둔

1961년

기지명 '캠프 험프리스'로 변경

2003년

주한미군 평택 이전 추진

2007년 11월

평택기지 확장 공사 시작

2017년 7월

미 육군 제8군 입주 시작

2018년 7월

주한미군 본부로 공식 출범

자료: 사단법인 국제안보 자료, 뉴스 등 취합

평택 기지가 본격적으로 확장 사업을 시작한 때는 2007년이다. 이후 10년에 걸쳐 서울 용산과 동두천, 의정부 등 전국 91개 구역에 분산됐던 미군기지가 평택과 남부 대구를 중심으로 재편됐다. 주한미군의 평택 시대는 지난 2017년 미 육군 제8군이 평택 캠프 험프리스에 입주하면서 시작됐다. 60여년 동안 서울 용산기지가 담당했던 ‘주한미군의 총본산’ 역할을 넘겨받은 것이다.

당초 502만㎡ 정도로 중소형 기지였던 평택 미군기지는 현재 약 1465만㎡ 규모로 확장됐다.

주한미군 재배치 사업에 따라 주변 부지가 추가로 수용됐다. 수도권의 대표 신도시인 판교신도시(892만㎡)의 1.5배로, 분당신도시(1963만㎡)보다 약간 작은 수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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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험프리스 기차역

2017년 2월 진행된 캠프 험프리스 기차역 개통식 /주한미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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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험프리스 정문

정문에 걸린 안내판 /주한미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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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험프리스 전경

항공기에서 촬영한 캠프 험프리스 /주한미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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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험프리스 내 시설들

미군과 가족들의 생활공간은 물론, 영화관과 식당 등이 마련돼 있다. /주한미군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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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프 험프리스 ‘윤 게이트(Yoon Gate)’

한국전쟁에서 미군과 함께 활약한 윤승국 장군을 기리기 위해 2020년 7월 ‘동창리 게이트’의 이름을 바꿔달았다. /주한미군 제공

미군의 단일 해외주둔지 중에서는 최대 규모로 조성된 평택기지 주변의 상권이 확장될 것이란 기대도 생겼다. 서울 이태원, 해방촌 일대가 용산기지의 수혜로 이국적인 상점과 식당들이 어우러진 중심 상권으로 성장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주한미군에 따르면 2020년 9월 말 기준으로 미군과 미군 가족, 군무원 등을 합해 약 3만7000명이 캠프 험프리스에 거주하고 있다. 모든 주한미군의 이전이 완료되는 시기를 확언하기 어렵지만, 이전 작업이 마무리되면 최종적으로 평택 기지에 4만3000~4만4000명이 머물게 될 예정이다.

다만 ‘제2의 이태원’으로 불릴 만한 상권으로 성장하기엔 아직 시간이 필요해 보이는 상황이다. 주한미군의 평택 이전이 아직 완료되지 않은 데다 캠프 험프리스에 군 가족 아파트와 초중고등학교는 물론 영화관, 도서관, 골프장과 수영장 같은 체육시설을 다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식당과 카페가 입점한 푸드코트, 쇼핑센터, 종교시설 등 생활편의시설도 마찬가지다. 기지 안에서도 큰 불편함 없이 생활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다는 뜻이다.

평택시는 주한미군의 한국 적응을 돕는 한편, 주민들과 교류를 늘리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평택시국제교류재단과 함께 주한미군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한편, 지역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카니발 등 축제도 개최한다. 다만 2020년에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비대면 방식으로 전환되거나 잠정 중단된 상태다.

건물 올리는 고덕국제신도시···10년 만에 흙 다지는 브레인시티

평택은 향후 10년 뒤에도 크게 달라질 도시로 꼽힌다.

우선 교통 여건이 꾸준히 개선되는 중이다. 지난 2016년 개통한 수서고속철도(SRT)가 지나는 지제역에 KTX도 정차할 예정이다. 오는 2024년까지 수원발 KTX를 지제역과 서정리역까지 연결해, 수도권 고속철도와 경부선을 잇는 계획이다.

평택시는 양주 덕정과 수원을 연결하는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C노선을 지제역까지 연장해달라고 꾸준히 정부에 건의했고, 이를 위해 화성시, 오산시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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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덕국제신도시 평화예술의전당 조감도 /평택시

택지개발 사업과 산업단지 조성 사업도 대규모로 추진되는 중이다. 고덕국제화 계획지구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경기도, 경기도시공사, 평택도시공사가 공동으로 평택시 서정동 모곡동, 장당동, 지제동, 고덕면 일대에 조성하는 신도시다. 면적 약 1342만m² 부지에 5만9500여가구를 공급한다.

고덕국제화지구 계획인구는 약 145000명에 달한다.

골조 작업이 한창인 구역이 있는가 하면, 속도가 빠른 일부 구역의 아파트 단지들은 준공 단계다. 아직 입주가 이뤄지지 않아 단지 주변에 설치된 버스 정류장에는 정거장 이름이 붙지 않은 상태다. 지난 2006년 지구 지정이, 2013년 착공이 이뤄졌다. 오는 2025년 준공을 목표로 달리고 있다.

10년 넘게 표류하던 브레인시티 개발 계획도 최근 첫 발을 뗐다. 도일동 일대 약 482만㎡ 부지에 2조원 이상을 투입해 국제연구시설과 상업시설, 주거시설 등을 포함한 지식기반도시를 조성하는 사업이다. 주한미군 기지 이전에 따른 개발계획 중 하나였지만, 사업비 조달과 정치적인 이유 등으로 수 차례 중단된 끝에 2019년 본궤도에 올랐다.

평택 브레인시티 개발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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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근 용인시 원삼면 일대에 SK하이닉스와 국내외 반도체 장비‧소재‧부품업체가 입주하는 반도체 클러스터가 조성될 예정인만큼, 연구개발(R&D) 면에서 브레인시티에 입주한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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