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섬 제주의 삼다(三多)는 더 이상 바람·돌·여자가 아니다

2020.12.04 연지연 기자

대한민국 유일의 특별자치도. 푸른 밤, 푸른 바다로 유명한 곳.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유학과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교육도시. 제2공항 건설을 둘러싼 갈등이 거센 곳.

이렇게 다채로운 수식어가 붙는 곳은 다름 아닌 제주다. 이전까지 통용됐던 삼다(三多·바람·돌·여자)도는 이제 어울리지 않는다. 2020년 제주는 여행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는 대표적인 관광지기도 했다가, 손꼽히는 교육 인프라를 갖춘 교육도시기도 했다가, 환경론자과 개발론자가 맞붙은 갈등의 핵심지이기도 하다.

제주의 2020년 모습은 어떨까.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휩쓸고 간 2020년 11월, 제주의 모습을 담아봤다.

코로나19 속 관광제주…돌아온 신혼부부

사회적 거리두기가 1단계였던 지난 11월 5일. 제주국제공항은 코로나19가 무색하게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었다. 공항 수하물 찾는 곳에는 골프가방을 가득 실은 카트가 넘쳐났다. 옷을 비슷하게 맞춰 입은 신혼여행객들도 눈에 띄었다.

제주국제공항에서 성산항까지 오가는 공항버스를 운전하는 고상철(45)씨는 “처음 코로나19가 터졌을 땐 정말 적막이 흘렀는데, 여름부터 차차 여행객이 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최근 제주를 찾는 관광객들은 크게 두 부류다. 골프 여행객, 아니면 신혼여행객. 신혼 부부들은 2013년 이래로 다시 제주를 찾기 시작했다. 코로나19로 해외 여행길이 막힌 탓이다. 새 신부 이윤정(31)씨는 “해외로 신혼여행을 가려다 코로나19로 제주로 여행지를 바꿨다”면서 “30년 전에 부모님의 신혼여행지 곳곳을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녔다. 해외를 간 것보다 더 의미가 있었다”고 했다.

신혼여행객들이 제주를 찾으면서 고급 호텔은 만실(滿室)인 상황이다. 10월 중순 기준으로 제주 핀크스 포도호텔의 연내 예약은 모두 찼다. 2인실 1박에 40만원 가량인 곳이다. 비슷한 가격의 고급 호텔인 호텔신라 제주나 롯데호텔 제주의 상황도 비슷하다.

이들 덕분에 호텔신라 제주나 롯데호텔 제주의 신혼여행 패키지 상품도 부활했다. 신혼여행객들이 해외여행으로 발길을 돌리면서 제주도 호텔들의 ‘허니문 패키지’는 2013년을 끝으로 사라진 상황이었다. 코로나19가 바꾼 대표적인 제주도의 변화상이다.

제주도 월별 관광객 수 추이

단위: 명
자료=제주관광협회

회복세인 제주도 관광 수요는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제주관광협회 집계에 따르면 2020년 10월 제주도 방문객은 1078000여명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본격화된 2~3월만 해도 월 50만명대로 급감했지만, 점차 예년 수준과 근접하게 늘었다. 골프여행객도 급증했다. 제주도에서 골프를 치기 위한 이들은 최근 10년 새 가장 많았다. 제주도에 따르면 10월 제주 골프장 내장객은 28만1604명(잠정)이다. 제주도민을 제외한 국내외 이용객만 18만3772명이었다.

호텔·맛집·카페·올레길 즐길거리 풍부해진 제주

제주가 관광도시로 발돋움하면서 새 건물도 속속 들어서고 있다. 제주시 시내에 롯데관광개발이 지은 복합리조트인 ‘제주드림타워’가 대표적이다. 그간 제주는 관광도시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랜드마크 건물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단숨에 빈틈을 채워줄 만한 곳이란 평가를 받는다.

제주드림타워는 기존 제주에서 가장 높았던 롯데시티호텔(89m)보다 2배 가량 높다. 연면적(30만3737㎡)은 여의도 63빌딩의 1.8배 규모다. 이 호텔 꼭대기에서는 한라산을 포함한 제주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롯데관광개발 관계자는 “1980년 제주시로부터 공개입찰을 통해 사업부지를 매입한 후 40여년 만에 준공을 받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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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드림타워 /이신태 PD

아름다운 제주 자연을 만끽할 수 있도록 다듬어진 올레길도 제주 관광 부흥에 한 몫을 하고 있다. 제주여행을 걷기여행, 힐링여행(치유하는 여행)으로 자리잡게 한 1등 공신이다. 올레는 제주 방언으로 좁은 골목이란 뜻으로 통상 큰길에서 집의 대문까지 이어지는 좁은 길을 말한다. 2007년 9월 8일 처음 만들어진 올레길 코스는 현재 26개에 달한다. 올레길이 정비되면서 제주엔 명상이나 요가, 치유 등의 단어가 여행과 결합됐다.

올레길 중 제주 함덕해변 옆에 위치한 서우봉을 지나는 19번 올레길은 유난히 인기가 많다. 봄이면 유채꽃, 가을이면 갈대가 흐드러지기 때문이다. 함덕리 주민들이 낫과 호미만으로 2년에 걸쳐 조성한 약 2.5㎞짜리 길 끝엔 잠시 쉬어갈 만한 작은 벤치가 있다. 드넓고 파란 바다와 너울이 높아 하얗게 부서지는 파도를 나무에 파묻혀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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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대표 관광지

오설록 티 뮤지엄 전경. /이신태 PD

제주의 자연환경을 십분 활용한 차밭도 대표적인 제주 관광지로 자리매김했다. 오설록이 대표적이다. 제주는 연 평균 강수량이 1800mm에 달하는 데다, 화산회토가 걸러낸 자연 청정수를 머금고 차나무가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차 생산지다.

맛집, 카페 등도 다양해졌다. 향토음식인 몸국이나 흙돼지구이, 갈치조림에만 그치지 않고 각종 퓨전음식을 선보이는 곳들이 늘었다. 요즘 감각에 맞춘 인테리어 식당도 많다. 관광객 정소람(35)씨는 “요즘 말로 ‘힙(hip·유행을 앞서가거나 최신 유행이라는 뜻)’한 곳이 많아 좋다”고 했다.

제주관광공사는 2000년대 이후로 제주의 관광 패턴이 다양화됐다고 보고 있다. 1970~1980년대만 하더라도 중문관광단지로만 여행객이 쏠렸는데 최근엔 제주 전역으로 여행객들이 퍼진다는 것이다. 중문관광단지는 1978년 서귀포시 중문, 대포, 색달 일대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관광지다. 야자수가 가득한 이 곳은 제주도의 전통적인 느낌보다 동남아 휴양지 느낌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제주관광공사 관계자는 “계획관광지인 중문단지로 쏠렸던 30년 전과 비교하면 최근엔 제주 골목골목을 여행객이 찾을 정도로 관광 콘텐츠 면에서 다양해졌다”고 했다.

미국 유학 말고 찾는 곳, 인구 1만명 넘은 제주 영어교육도시

‘제주’를 떠올리며 설레지 않을 사람이 없을 정도로 국내 관광지의 대명사로 자리잡았다지만, 2020년 제주의 변화가 관광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관광지에서 눈을 돌려보면, 유학길을 오르는 대신 제주를 택한 1만명이 살고 있는 제주 영어교육도시가 있다. 국내 대학 진학에 머무르지 않고 해외 유수 대학으로 진학할 수 있는 아이들을 길러내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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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영어교육도시

영어교육도시 내 국제학교. /이신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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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영어교육도시

현재 국제학교는 모두 세 곳이다. 개발을 담당하는 JDC는 3개 학교를 더 유치할 계획이다. /이신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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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영어교육도시

주거시설 모습. 4층짜리 빌라로 구성돼 있다. /이신태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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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영어교육도시

국제학교 바로 앞 주거단지 모습. /이신태 PD

제주국제공항에서 차로 40분을 달리니 넓직한 운동장을 갖춘 학교들이 연이어 보였다. 11월 초, 학교의 드넓은 운동장에는 초등학생 서너명이 모여 공놀이를 하고 있었다. 학부모 윤경희(43)씨는 “방학이라 아이들이 모두 집에 가고 없다. 그래서 더 평화로워보일 수 있다”면서 “늘 이런 모습만은 아니다. 교육열이 상당하다”고 했다.

제주영어교육도시는 자녀들의 조기유학 등으로 사회적 손실이 상당하다는 지적에 따라 2008년부터 조성됐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 379만1000㎡ 부지에 4곳의 국제학교가 있다. 국내 첫 공립 국제학교인 한국국제학교(KIS, 2011년 8월)와 영국 노스런던칼리지잇스쿨 제주(NLCS Jeju. 2011년 9월), 캐나다의 브랭섬홀 아시아(BHA, 2012년 10월), 미국의 세인트존스베리아카데미 제주(SJA Jeju, 2017년 10월) 등이다.

제주영어교육도시 개발을 도맡는 JDC 관계자는 “해외 명문학교 173곳에 투자유치 안내서를 보냈고, 4곳을 유치했다”면서 “국제교육도시가 만들어지면서 2020년 기준으로 유학수지절감 누적액만 8250억원에 이른다”고 했다.

교육도시로서 제주는 점차 그 자리를 잡아가는 모양새다. 입시 결과가 학부모들 사이에서 입소문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첫 졸업생을 배출한 2013년 졸업예정자 10명 중 9명은 영국 케임브리지 등 해외명문대학으로 진학했다. 문장을 눌러서 관련기사를 확인해 보세요 코로나19 여파로 영미권 유학생들이 속속 귀국하면서 제주 국제학교를 바라보는 이들은 더 늘었다.

JDC 관계자는 “4개 학교의 충원율도 80%에 육박할 만큼 올라왔기 때문에 오는 2021년까지 3개의 국제학교를 더 유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균형개발과 오버투어리즘 그 사이… 제2공항 갈등 겪는 제주도

제주가 급속도로 발전하자 이를 둘러싼 갈등도 속속 생기고 있다. 제2공항 신설을 둘러싼 갈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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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부지로 지정된 성산읍 일대. /이신태 PD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제주공항의 활주로 이용률은 2016년 100.4%를 기록했다. 수용능력을 초과했다는 뜻이다. 중국과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두고 중국인 관광객이 줄어든 이후로도 상황은 비슷하다. 혼잡시간대엔 항공기 지연이 허다하다.

국토교통부는 제주공항을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으로 보고 있다. 1분 40여초마다 항공기가 뜨고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제2공항은 안전 문제를 감안해서라도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제2공항 부지로 지정된 제주도 서귀포시 성산읍 신산리와 온평리, 고성리 등 일대에서부터 찬반이 갈리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성산읍 일대 4.9㎢ 부지를 수용해 제2공항을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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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공항 건설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이 각각 붙여놓은 현수막. /연지연 기자, 이신태PD, 그래픽=이승연

찬성하는 쪽은 이제 성산읍도 개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난 30년간 각종 개발이 제주 동(東)쪽으로 집중되면서 성산읍을 포함한 서쪽은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폐교 위기, 휴경지의 증가 등이 대표적이다.

성산읍 오조리에서 숙박업과 식당을 하고 있는 김모(46)씨는 “공항이 들어와 일자리가 만들어져야 한다. 여행객들이 제2공항으로 들어오면 숙박업소나 식당과 같은 부수사업도 좋아질 것”이라고 했다.

반대하는 입장도 강경하다. 온평리에서 식당을 하는 김모(50)씨는 “마을이 없어지는데 어떻게 찬성할 수 있겠나. 여기서 나고 자랐고 고향도 직장도 모두 여기다. 이 곳이 아니면 갈 곳도 없다. 어디로 가서 살란 말이냐”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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