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커피 수출하는 강릉... 음식도시 넘어 미래도시 꿈꾼다

2020.11.03 유한빛 기자

총인구 23만명. 서울의 웬만한 구(區) 하나보다 인구가 적은 강원도 강릉에는 여느 도시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른 별명이 붙어 있다. ‘커피의 도시’다. 검색 포털 검색창에 ‘강릉’을 입력하면 ‘커피’가 연관 검색어로 따라붙고, 온라인 블로그나 소셜미디어에서는 강릉으로 카페 투어를 다녀온 후기를 심심찮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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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의 관광 명소들

출처:유한빛 기자·강릉시 제공

동해와 접한 강원도의 수많은 해변 중 하나였던 안목해변은 강릉을 대표하는 커피 거리로 자리잡았다. 안목해변을 따라 걷다 보면 그리스 산토리니 해변을 떠올리는 흰색과 푸른색으로 단장한 카페며 복고풍으로 꾸민 카페, 2~3층짜리 건물의 테라스 공간을 개방한 루프톱(rooftop) 형태의 카페에 유명 프랜차이즈 카페까지 나란히 늘어선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강릉에서 인기를 끈 카페는 역으로 서울에 진출해 분점을 내기도 했다.

커피콩 한 알 수출하지 않는 강원도의 작은 도시가 2020년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커피의 도시로 유명세를 떨치는 이유는 무엇일까.

커피의 도시 강릉, 서울로 진출하는 ‘메이드 인 강릉’ 커피

해마다 10월 첫째 주말이면 강릉시는 커피 축제의 장으로 변신한다. 지난 2009년부터 매년 열리는 ‘강릉커피축제’다. 강릉은 지방 도시 중에서 처음으로 커피 축제를 개최했다. 11번 행사를 치른 강릉커피축제는 높은 인지도를 자랑한다. 한국기업평판연구소에서 주관한 ‘2020년 축제 브랜드 평판 빅데이터 분석’에서 전국 775개 축제 중 수원화성문화제에 이어 전국 2위로 꼽혔다.

축제 기간이 되면 강릉 실내종합체육관 등 주요 시설을 주행사장으로 꾸미고 커피 시음회와 바리스타 대회, 가족 여행객을 겨냥한 어린이 만들기 교실 등을 진행한다. 안목해변과 사천, 강릉 시내 등에 조성된 커피 거리의 카페들도 소소한 행사를 진행하고, 그 해의 축제 주제에 따라 강릉 주요 관광지에서 음악 공연을 열기도 한다. 지난 2018년에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념해 2월에 추가로 축제를 개최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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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커피축제

지난 2019년 개최된 강릉커피축제 행사장 전경 /강릉 커피축제 사무국 제공

강릉이 커피의 도시로 떠오른 배경은 무엇일까. 현지에서는 강릉이 예로부터 차를 즐기던 고장이었다는 점을 근거로 들기도 한다.

강릉시 강동면 하시동리에는 한송정(寒松亭)이라는 유적지가 있다. 고려 초기의 시인 장진산(張晉山)이 한송정곡이라는 시를 남기기도 한 이 정자는 신라 시대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는 터만 남은 이곳에서 차 우물과 아궁이, 돌로 된 절구 따위가 발견됐다. 역사학자들은 신라 화랑들이 한송정에서 차를 마시며 경치를 즐겼을 것으로 추측한다.

안목해변은 1980년대만 해도 고기잡이 배가 드나들던 어촌 마을이다. 정확한 시기를 가늠하지는 못하지만, 1988년 서울올림픽에 맞춰 국내에 보급된 커피 자동판매기가 강릉까지 유입됐고 안목해변에도 하나둘씩 설치됐다. 자판기를 중심으로 동네 주민들이 모여들면서 커피를 마시는 문화가 생겼고, 이 때문에 안목해변에 커피 거리가 조성됐다는 설도 있다.

국내 1세대 바리스타로 꼽히는 박이추 바리스타가 2000년 강릉에 정착해 보헤미안커피를 열었고 이후 테라로사처럼 서울에서도 매장을 찾아볼 수 있는 커피전문점들이 강릉 곳곳에 속속 자리를 잡았다. 강릉의 유명 카페들이 여느 카페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원두를 볶는 로스터리(roastery) 카페라는 것. 바리스타가 직접 내리는 드립 커피와 카페들이 여러가지 원두를 자체적으로 배합한 블렌딩(blending) 원두를 판매하는 게 보편화돼 있다.

한국인의 커피 소비 방식 변화

아래 커피 종류를 눌러 비율을 확인해 보세요
자료: 스타티스타
기사 이미지 그래픽=송윤혜

강릉에 로스터리 카페들이 하나둘 문을 여는 사이, 한국의 커피시장도 급성장했다. 믹스 커피 같은 인스턴트 제품이 주류였던 국내 커피시장은 10여년 만에 크게 재편됐다. 시장조사전문기관인 스타티스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7년 전체의 95%를 차지했던 인스턴트 커피의 비중은 2019년 61%로 줄었다. 인스턴트 커피가 밀려난 자리는 에스프레소를 이용한 아메리카노와 카페 라떼, 드립 커피, 콜드브루 등 원두로 직접 내린 커피가 차지했다.

커피전문점시장도 10배 이상 성장했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 커피전문점 매출은 3억 달러(한화 약 3400억원)에서 43억 달러(약 5조원)로 늘었다. 한국인 성인 1인이 1년 동안 마시는 커피는 평균 353잔으로, 전 세계 성인 평균 소비량(132잔)의 두 배 이상이다. 해수욕장과 소나무 숲 같은 여름철 관광지가 가장 유명했던 강릉이 사계절 관광지로 성장한 배경이다.

올림픽이 놓은 철로 따라 관광산업 커지는 강릉

강릉은 201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관광도시로 무게감을 키웠다. 강원도와 수도권을 잇는 광역교통망이 개선된 덕을 봤다. 동해안을 따라 강원권을 여행하는 수요도 늘면서 서핑 등 해양레저 스포츠의 명소가 된 양양과 속초, 강릉으로 이어지는 여행 코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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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서울양양고속도로가 2009년 서울~춘천 구간, 2017년 6월 춘천~양양 구간의 차례로 개통했다. 서울 동부에서 자동차로 3시간 정도면 양양과 속초 등 강원 북부 도시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서울역에서 강릉역을 잇는 고속철도(KTX) 경강선은 지난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을 앞두고 개통됐다. 평창올림픽은 강원도 평창군, 정선군, 강릉시 등 세 도시에서 나눠 개최됐다. 강릉에는 스피드스케이팅 등 빙상 종목을 위한 경기장이 마련됐다. 평창올림픽을 맞아 방한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북한 조선노동당 제1부부장도 이때 개통한 KTX 경강선을 탔다. 인천국제공항에서 김여정 제1부부장 일행을 위해 특별 편성된 열차를 타고 KTX진부오대산역까지 이동했다.

KTX로 이동 시간이 단축되자 기차를 이용한 관광객도 늘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통계에 따르면 2017년 1483000 여명이던 강원권 철도 이용객은 지난 2019년 6244300명으로 늘었다.

영상 화면을 마우스로 드래그하면 강릉항 전경을 360도로 둘러볼 수 있습니다. 모바일로 보면 더 편리합니다.

늘어난 승객의 상당수는 강릉으로 향했다. 2019년 강릉역 이용객은 346만7200명이다. 1년 동안 강원권 철도를 이용한 승객의 절반이 KTX강릉역에서 타고 내렸다는 얘기다. 12만9000명에 불과했던 2017년 집계와 비교하면, 열차로 강릉을 찾는 인원은 2년 만에 27배가 됐다.

강릉에 호재가 될 건설사업은 아직 진행 중이다. 경기도 서부인 시흥 월곶역과 강릉역을 잇는 경강선이 확장되고 있다. 오는 2024년 여주~원주 노선, 2025년 월곶~판교 노선이 순차적으로 개통될 예정이다. 노선이 완공되면 서울 강남에서는 1시간 30분, 인천에서는 1시간 50분이면 강릉에 닿게 된다.

관광객이 늘면서 강릉 주요 해변의 땅값도 끌어올렸다. 강릉 경포해수욕장 주변 토지 실거래가격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서너 배로 뛰었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공개시스템을 활용해 부동산 플랫폼 밸류맵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경포해수욕장에서 200m 이내 거리인 업무상업시설의 토지는 최근 3.3㎡당 1000만원대에 실거래됐다. 이 지역의 토지는 지난 2015년까지만 해도 단위당 200만~300만원대에 거래됐다.

강릉 해수욕장 인근 부동산 실거래가 추이

단위 : 만원
자료: 밸류맵·국토교통부 실거래가시스템, 경포해수욕장 200m 이내 업무상업시설 기준

문장을 눌러서 관련기사를 확인해 보세요다만 강릉 역시 2020년 전 세계를 강타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강릉시는 올해 제12회 강릉커피축제의 개막일을 불과 3주 앞두고 취소했다. 지난 2009년 첫 개최 이후 해마다 10월 첫째 주말이면 열리던 커피축제지만,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면서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된 여파를 피하지 못했다.

강릉중앙시장에서 호떡전문점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올 여름 휴가철에도 예년보다 관광객이 크게 줄었는데 가을 단풍철에도 손님이 이전만큼 많지 않았다”면서 “특히 서울 등 수도권이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였던 (8월 말~9월 초) 2주 동안은 여행객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고 말했다.

미래 도시 꿈꾸는 강릉, 도약에 성공할까

커피만 유명한 것은 아니다. 이미 민간에서는 강릉이 하나의 식품 브랜드로 자리매김했다. 강릉에서 유명한 먹거리들이 시판 제품으로 재탄생했다. 보헤미안커피를 컵 제품으로 개발한 ‘강릉커피’를 비롯해 콘 아이스크림으로 출시한 ‘강릉 초당 순부두 아이스크림’, 편의점의 자체브랜드(PB) 컵라면 제품으로 만들어진 ‘교동반점 짬뽕’ 등은 서울과 전국 편의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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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승연

강릉시는 커피의 도시라는 별명을 얻은 데서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시 차원에서는 자연과 역사 명소, 해양레저를 연계해 관광산업을 한층 더 육성하는 한편, 미래 먹거리를 개발하는데도 공을 들이고 있다.

우선 강릉시는 2020년 주요 정책 과제로 ‘사계절 문화·관광도시’를 내걸고 ‘2000만 관광객 시대’를 목표로 세웠다. 올림픽 특구 2단계 개발과 KTX 등 철도망을 활용한 컨벤션 산업 육성 등을 세부 방안으로 구상했다.

강릉시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8년 방문객은 1669만명이다. 지난 2015~2016년 연 평균 1080만명에서 50% 가까이 늘어난 숫자다.

과학산업 육성과 창업 지원에 대한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강릉시 대전동과 서천면 방동리 일대 148만6850㎡부지에 조성된 강릉과학지방산업단지는 강릉시의 미래 산업 계획의 한 축이다. 해양생물융합산업과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을 아우르는 산학연관 협력체제를 구축하는 게 주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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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과학산업단지 전경

강릉시가 동해권의 연구개발(R&D)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과학산업단지. /강릉과학산업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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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W강릉소프트웨어융합센터

소프트웨어 분야의 창업과 기업 운영을 지원하는 기관. /강릉과학산업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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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과학기술진흥센터

강원도 내 산학연관 협력을 지원하고, 연구개발 인력을 양성하는 기관. /강릉과학산업진흥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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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양바이오산업지원센터

해양생물산업 기업을 육성하고 기술 개발을 지원하는 기관. /강릉과학산업진흥원 제공

연구개발(R&D) 중심 단지인만큼, 대규모 제조업 단지와 비교할 만한 고용 효과는 발휘하지 못한 상태다. 강릉과학산업진흥원에 따르면 2020년 8월 기준으로 산업단지에 입주한 기업은 모두 140개이고, 연구소 4곳과 강원소프트웨어융합센터 등 지원기관 5곳이 운영되는 중이다. 근무 인원은 모두 1615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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