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도시로 쇼핑몰로 30대 사로잡은 하남은 오늘도 젊어진다

2020.11.13 허지윤 기자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논·밭을 쉽게 찾아볼 수 있던 경기도 하남시가 수도권을 대표하는 젊은 신도시로 변신 중이다. 위례신도시 조성을 비롯한 택지개발 사업으로 신축 아파트 단지가 여기저기 들어섰다. 주택이 공급되면서 젊은 인구도 늘었다.

젊은 상권도 형성됐다. 2020년 현재 하남 번화가는 20~30대 사이에서 ‘반차 쓰고 갈 만한 핫플레이스’, ‘데이트하기 좋은 곳’으로 꼽힌다.

서울과 가까워진 신흥 주거지 하남

서울 중심부에서 경기도 하남까지 자동차로 약 30km. 넉넉잡아 1시간 30분 정도면 닿는 이 도시는 2020년 주택 수요자들의 관심이 가장 뜨거운 지역이다. 서울 강남권에서는 홍대·합정이나 대학로보다 하남이 더 가까울 정도다.

서울지하철 5호선 종점인 상일동역에서 미사역을 지나 하남풍산역까지 이어지는 하남선 1단계 구간이 8월 초 첫 운행을 시작하면서 서울 접근성이 대폭 개선됐다.

하남풍산역 8번 출구로 나가자, 여느 신도시처럼 대단지 아파트들이 먼저 보였다. 국토교통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월 말 기준으로 하남 지역의 아파트는 7만2517가구다. 공동주택 중에서 아파트의 비중이 95.2%로, 서울·경기 인천 등 수도권 지역을 통틀어 아파트 비중이 가장 큰 도시로 꼽힌다.

하남의 기존 도심은 1980년대부터 주거지가 형성된 하남 덕풍동 일대다. 아파트가 이렇게 많이 들어서게 된 건 대규모 택지개발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지난 2002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된 하남 풍산지구가 개발되면서 사람이 몰리기 시작했고, 지난 2009년 보금자리주택 시범지구로 지정된 곳은 이후 미사강변도시가 됐다.

2013년 12월 본격적으로 입주하기 시작한 위례신도시는 서울 송파구와 성남시, 하남시에 걸친 675만3000㎡ 부지에 조성 중이다. 계획상 4만3000가구가 입주할 예정이다. 장지천을 중심으로 북위례와 남위례로 나뉘는데, 남위례는 2017년 3만여 가구가 입주를 마쳤다. 북위례 지역의 아파트 분양은 육군특수전사령부 부지 이전 문제로 중단됐다가 지난 2018년 재개됐다.

하남 감일지구는 남쪽의 위례신도시와 연계해 서울 강남권의 주택 수요를 대체하고, 공장· 창고 지역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지정됐다. 감일동, 감이동 일대에 공공분양주택과 공공임대주택 등 1만3886가구를 짓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기사 이미지 하남시 덕풍동과 신장동 일대 주요 아파트 단지 전경. /허지윤 기자

미사강변도시, 위례지구, 감일지구에 이어 수도권 3기 신도시 조성사업까지 이어지면서 하남의 공동주택사업지는 약 929만㎡(약 281만평)로 확대될 예정이다. 하남이 수도권 동남권을 대표하는 주거지역으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것이다.

주택 공급이 이어지면서 인구도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하남시의 인구는 2020년 9월 말 기준 28만7452명으로, 1년 만에 6.6%(1만7913명) 늘었다.

전체 인구 중에서는 젊은층의 비중이 큰 편이다. 40대(17.5%)가 가장 많고, 그 뒤를 30대(17.2%)와 20대(12.2%)가 잇는다.

젊은 인구 뒤따른 쇼핑몰과 신흥 상권

2020년 10월의 마지막 토요일 오후 경기도 하남시. 울긋불긋하게 물든 산이 시야에 먼저 들어왔다. 하남시 미사대로에 들어서자 달리던 차들이 서행하며 줄을 서기 시작했다. 대형 쇼핑몰 ‘스타필드 하남’으로 들어가는 차들의 행렬이었다. 이날 주차장 6개 층에는 모두 ‘만차’ 표시등이 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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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하남시 미사대로

스타필드 하남으로 가는 길에 차량들이 줄을 지어 서있다. /허지윤 기자

하남이 젊은 상권까지 품게 된 데는 ‘스타필드 하남’이 들어선 게 한 몫했다. 신세계그룹은 글로벌 쇼핑몰 개발·운영 기업인 미국 터브먼사와 함께 스타필드 하남에 1조원을 투자했다. 연면적 45만9498㎡, 축구장 66개 크기인 부지에 지하 4층~지상 4층인 쇼핑몰을 지었다. 단일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다. 지난 2016년 9월 스타필드 하남의 개장일에만 13만명이 찾았다. 개장 사흘 동안 방문객 수만 50만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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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세계그룹은 글로벌 쇼핑몰 개발·운영 기업인 미국 터브먼사와 함께 스타필드 하남에 1조원을 투자했다. 지하 4층~지상 4층 총 8층 규모, 연면적 45만9498㎡, 축구장 66개 넓이의 단일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 쇼핑몰이다. /허지윤 기자

스타필드 하남의 외관과 내부

/허지윤 기자

수도권에 쇼핑몰이 한두 곳이 아닌데 왜 다른 지역의 젊은 부부나 학생들이 하남을 찾을까? 해외생활을 하다 2019년 한국에 들어왔다는 한 40대 부부는 “서울에는 반려견과 함께 갈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반면 하남에서는 가족, 반려견과 함께 바람도 쐬고 쇼핑과 식사를 하며 주말 하루종일 편하게 즐길 수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프리미엄 자동차 브랜드들을 한 곳에서 체험할 수 있는 대형 전시장 역할도 맡았다. 글로벌 자동차업체인 테슬라, 메르세데스 벤츠, BMW, 재규어랜드로버, 제네시스, 볼보 등도 이곳에 전시관을 운영한다.

스타필드 하남의 반려동물들

산책 나온 강아지들을 확인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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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필드 등 대형 쇼핑몰을 중심으로 젊은 감성을 반영한 카페와 레스토랑도 속속 문을 열었다. 소셜미디어인 인스타그램에서도 관련 사진을 뜻하는 해시태그(#)에 하남이란 단어가 자주 걸린다. 2020년 11월 기준으로 #하남은 63만9000여건, #하남스타필드 32만7000여건, #하남맛집은 20만9000여건, #하남카페는 11만4000여건에 달한다. 그만큼 하남에서 여가를 즐기고 소비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방증이다.

3기 신도시 추진에 지역민 불만도 수면 위로

하남의 변화는 현재 진행형이다. 정부는 지난 2018년 12월,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으로 ‘수도권 30만가구 공급계획’을 발표하면서 경기도 하남 교산을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 등과 함께 3기 신도시 지구로 지정했다.

천현·교산·춘군·상사창·하사창동 일대 649만㎡가 하남 교산지구에 해당한다. 정부는 이곳에서 3만2000가구를 공급할 계획이다. 국토부에 따르면 하남 교산지구는 토지보상공고를 마쳤고, 2020년 12월부터 보상에 관한 협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새 주거단지가 조성될 하남 교산지구는 현재 어떤 모습일까. 푸른 산 아래 나있는 길을 따라 물류창고들이 곳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산과 논, 밭, 하천이 보였다. 아파트 같은 고층 건물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길가에는 붉은 현수막들이 눈에 띄었다. “토지보상금을 10조로 상향조정하라” “중앙정부 규탄한다” “기업 이전부지 저렴하게 공급하라” 같은 문구가 도로가를 점령하고 있었다.

3기 신도시 지정에 따른 토지주들의 불만이 만만치 않은 것이다. 빈 땅에 물류창고를 지어 임대하는 수익이 쏠쏠했는데, 이를 포기해야 하는 토지주들은 토지보상금액이 적다는 점을 문제로 삼고 있다. 물류창고 등을 빌려 사용하던 중소기업 입장에서도 영업 터전을 잃게 된다며 불만을 제기한다.

30년 가까이 하남에 살고 있다는 주민 박 모씨는 “남한산성 자락을 병풍으로 삼고 있는 이곳마저 무색무취의 아파트촌으로 만들다니 정말 안타깝다”면서 “외지인들은 너네 집값, 땅값 올라 좋겠다고 하지만 우리가 새 집으로 이사갈 것도 아닌데 세금만 더 오르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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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 교산신도시 부지

2020년 9월 현황. /허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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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도시 예정지 주민들의 반발

신도시 조성 사업에 반발하는 주민들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허지윤 기자

그럼에도 하남 교산지구는 수도권 3기 신도시 사업지 가운데 예비청약자들의 관심을 가장 뜨겁게 받는 곳이다. 서울보다 집값은 저렴한데 대중교통망이 확충되면서 강남업무지구 접근성이 개선되고 있기 때문이다. 문장을 눌러서 관련기사를 확인해 보세요국토교통부의 3기 신도시 웹사이트의 청약일정 알리미 서비스 신청 결과에 따르면, 예비청약자들의 선호도 1위는 하남 교산(20%)이다.

3기 신도시 사전청약 일정이 발표되자, 하남으로 거주요건을 채우기 위해 이사를 하는 사람들이 생겼다. 하남시의 주민등록 인구는 2020년 10월 5일 기준 28만7452명으로, 2019년 말(27만2455명)보다 5.5%(1만4997명) 늘었다.

전세지수 변동률

2019년 대비 기준, 단위: %
자료 : 직방

예비 청약자들이 하남 전세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전세 물건도 마르다시피 했다. 그만큼 아파트 전셋값은 급등했다. 청약시장에서 ‘1순위 해당지역’ 요건을 갖춰야 청약에 당첨될 기회가 조금이라도 높아지다보니, 하남으로 이사해 거주요건 2년을 채우려는 계산이 반영된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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