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여행지'로만 기억되던 이곳… 골목길 하나가 경주를 바꿨다

2020.11.17 고성민 기자

2020년 9월 15일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한복을 입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는 젊은이들과 유모차를 끌고 산책하는 가족, 음식점 앞에서 길게 줄을 선 이들이 많았다. ‘황리단길’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해진 경주 황남동 포석로 일대의 풍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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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기 관광지로 부상한 황리단길

2020년 9월 15일 경주 황남동 황리단길. /고성민 기자

문장을 눌러서 관련기사를 확인해 보세요 황리단길은 경주 ‘황남동’과 서울의 인기 상권 중 하나인 이태원 ‘경리단길’을 합해 만든 이름이다. 본래 ‘황남 큰 길’로 불리던 이 지역에는 1960~1970년대 지어진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있다. 허름한 식당과 가정집들이 있던 이 길에 개성 있는 카페와 게스트하우스, 술집 등이 들어서면서 경주의 명소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오래된 목욕탕 건물은 옥상을 개방한 한옥 카페로 변신했고, 툇마루에 앉아 수제 맥주를 마실 수 있는 카페 겸 술집도 들어섰다. 포석로를 따라 한복이나 1970~1980년대 교복을 대여해주는 가게와 빵집, 찻집, 밥집들이 줄줄이 문을 열었다.

복고 열풍이 바꿔놓은 경주 골목길 풍경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골목들은 황리단길 상권을 특별하게 만드는 요소다. 천마총과 미추왕릉 같은 신라 시대의 유적지를 배경으로 둔 가게들이 기와지붕을 얹고 나무 마루를 깔았다. 서울 북촌 한옥마을에 고풍스러운 전통 한옥이 많다면, 황리단길은 한옥을 세련되게 재해석한 새로운 복고풍인 ‘뉴트로(New+Retro)’ 한옥들이다.

가게 이름들도 예스럽다. 옷가게는 OO양장점, 베이커리는 OO과자점,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OO사진관. 식당이나 카페 이름도 ‘~당’이나 ‘~옥’, ‘~정’, ‘~집’ 같은 글자로 끝난다. 시계를 수십년 정도 거꾸로 돌린 듯한 이름과 인테리어로 꾸몄다.

경주 황리단길의 뉴트로 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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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 상권은 나날이 확장하고 있다. 2020년 황리단길과 주변 주택부지에선 크고작은 공사가 이뤄지는 한옥 형태의 건물들이 어림잡아 20채 이상 보였다.

인부들이 건물을 철거하는 곳, 건물 내부 마감 공사를 하는 곳, 매매·임대 현수막이 걸려있는 건물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오래된 단독주택을 헐거나 그동안 놀리던 빈집을 카페나 주점 등으로 개조하는 작업이다. 대로인 포석로의 뒤쪽 작은 골목길까지 새로운 가게들이 들어서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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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한옥의 인기

리모델링 공사 중인 황리단길의 한 건물. /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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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워진 한옥의 인기

매매·임대 문의 현수막이 걸린 황리단길의 한옥 건물. /고성민 기자

이런 인기를 방증하듯, 제자리걸음 중인 경주시 주택 가격과 달리 황리단길 주변 부동산가격은 해마다 상승하고 있다. 토지건물 정보 플랫폼인 밸류맵에 따르면 황리단길 인근 단독·다가구주택의 3.3㎡(1평)당 매매가는 2020년 1~8월 평균 728만원이다. 경주시 평균(267만원) 3배에 육박한다. 지난 2014년만 해도 황리단길 주변 주택의 1평당 가격는 265만원으로, 경주시 평균(278만원)보다 약간 낮은 수준이었다.

경주시와 황리단길 단독·다가구 매매가 추이

단위: 만원/3.3㎡
자료: 밸류맵

‘제2의 전성기’ 맞은 수학여행의 도시… 미약한 산업기반은 여전히 고민거리

1000년 가까이 신라의 수도였던 덕에 ‘땅만 파면 유적이 나온다’는 말이 있는 경주. 그동안 수학여행지와 역사문화 유적지로만 알려졌던 이 도시가 2020년 현재는 젊은층의 데이트 코스와 맛집 여행지로 떠올랐다. 새로운 전성기를 맞은 셈이다.

그러나 2020년에는 경주에 불었던 관광 붐도 잠시 주춤해졌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때문이다. 경주시에 따르면 불국사와 석굴암, 남산, 대릉원, 동궁과월지, 주상절리, 경주월드 등 경주 시내 주요 24개 관광소를 찾은 관광객은 2019년 1038만명이었다. 2020년 1~10월 누적 방문객 수는 459만명에 그쳤다. 2019년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경주의 경제는 관광 산업에만 기대고 있는 탓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은행 포항본부에 따르면 경주의 경제성장률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가 반영된1990년대 후반보다 2000년대 들어 더 낮아졌다. 1995~1999년 연 평균 3.7%에서 2000년대 연 평균 3.1%로 하락했다. 마땅한 기업이 없다 보니 이렇다할 성장 동력도 없었던 셈이다.

경주에는 369만㎡ 규모인 월성전원국가산업단지 한 곳과 일반산업단지 29곳이 있다. 2019년 말 기준으로 등록된 2004개 공장 중 기계금속 분야가 753개로 가장 많다. 그 외에 자동차부품(518개), 비금속광물(144개), 음식료품(100개), 기타(489개) 등 순이다.

수출 규모는 2019년 말 기준으로 6억2600만달러(약 7000억원)에 불과하다. 수출 기업은 대기업 7개, 중소기업 44개 등 모두 51개 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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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사성폐기물처분장 전경

경주 양북면에 들어선 국내 첫 방사성폐기물처분장. /한국원자력환경공단 제공

성장이 멈춘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경주시는 산업단지를 유치하고 주변 지역과 연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 2016년 한국수력원자력 본사가 경주로 이전한 것이 좋은 계기가 되고 있기도 하다. 경주 양북면에는 국내 첫 방사성폐기물처분장(방폐장)이 건설됐다. 지난 2015년 8월부터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지난 2016년 6월 울산~경주~포항 고속도로가 개통한 것을 계기로 울산시·포항시와 함께 ‘해오름 동맹’을 구축하기도 했다. 소재(포항)-부품(경주)-최종재(울산)로 이어지는 보완적 산업 생태계를 마련하겠다는 구상이다. 세 도시를 연계한 관광 상품을 개발하고 연구개발(R&D) 분야, 도시 기반시설 분야, 농축산 분야 등에서도 공동협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더해 오는 2028년까지 정부 국책사업으로 추진되는 혁신원자력연구단지도 들어설 예정이고, 한국수력원자력 유관 기관들도 이전 중이다. 다만 국가 발전정책에서 원자력발전의 우선순위가 낮아져, 기대만큼 경제 효과가 발생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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