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업도시의 불빛은 어두워졌지만, 문화도시 창원은 오늘이 빛난다

2020.12.01 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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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아구찜거리

창원시 마산합포구로 행정구역이 재편된 옛 마산시 오동동 아구찜 거리 모습. /연지연 기자

2020년 11월 13일 금요일 저녁,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의 마산아구찜거리. 금요일 밤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한산했다. 아구찜 거리에서 10년 넘게 장사를 했다는 김항성(가명·46)씨는 “이렇게 된 지 꽤 오래됐다”며 혀를 끌끌 찼다. 김씨는 “공장도 잘 안 돌아가고 코로나19까지 번지면서 모든 게 멈춰버렸다”면서 “창원시와 합쳐지고는 마산이 구도심이 되어버려서 더 이렇게 된 것 같다”고 했다.

올해는 마산과 창원, 진해. 이른바 마·창·진이 창원시로 통합된 지 10년째 되는 해다. 이 통합으로 창원시는 인구 109만명에 예산만 2조2000억원에 이르는 거대 도시로 재탄생했다. 면적은 737㎢로 서울(605㎢)보다도 크다. 하지만 통합 10년을 맞은 거대 도시의 현재는 영화로운 과거와 비교했을 때 아직 갈 길이 멀다. 제조업이 위축되면서 각종 경제 지표는 뒷걸음질을 쳤고 통합을 낯설게 바라보는 주민들의 시선도 여전하다.

제조업 부진에 활기 잃은 창원

통합 후 10년이 지났지만 창원은 도시의 활기를 잃고 있다. 주력산업인 조선·기계·자동차 분야 대표기업들의 수주 부진으로 위축돼서다.

창원시에 본사·공장이 있는 두산중공업은 타격이 큰 대표 기업 중 하나다. 두산중공업은 원자력·석탄화력 수주 부진으로 올 들어 자산매각과 함께 인력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올해 초 1차 명예퇴직으로 650여명이 회사를 떠났다. STX조선해양 역시 수주 부진을 겪고 있다. 2018년 6월부터 생산직 515명이 무급 순환휴직을 반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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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도심

창원시청으로 가는 큰 길가 도로. 옆으로는 창원 코엑스가 있다. /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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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도심

2019년 창원시청 광장 앞 백화점과 상업시설들. /조선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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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원 도심

창원 대원동의 신축 아파트(뒤)와 구축 아파트가 대조된다. /연지연 기자

이런 분위기 속에서 창원시의 각종 지표는 통합 10년간 미끄러졌다. 통합 첫 해인 2010년 지역내총생산(GRDP)가 33조6780억원에 달했지만, 가장 최근 통계치인 2016년엔 32조4300억원으로 1조원이 오히려 줄었다. GRDP 기초지자체 순위에서도 경기도 화성, 충남 아산, 경기도 용인에 자리를 내줬다. 수출액도 감소 추세다. 2011년 243억4700만달러(한화 약 26조9300억원)이었던 수출액은 지난해 153억200만달러(약 16조9300억원)로 줄었다.

창원공업단지의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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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이미지 박정희 전 대통령이 창원기계공업기지 예정지를 시찰하고 있다. /창원시청
기사 이미지 경남 창원공업단지 전경. /창원시청
기사 이미지 창원공업단지 사원 합동결혼식 모습. /창원시청
기사 이미지 경남창원국가산단 전경. /창원시청

그렇다고 도시가 뒷걸음질만 친 것은 아니다. 발전도 있었다. 특히 문화적 측면에서 변화가 감지된다. 창원’NC파크’ 야구장을 조성한 것이 대표적이다. 1982년 건립된 마산종합운동장을 철거하고 2019년 3월 18일에 개장한 창원 NC파크 야구장은 창원 시민의 자랑이다. 이 구장을 연고지로 삼은 NC다이노스는 2020년 창단 이후 처음으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감격을 맛보기도 했다.

그 외에 마산로봇랜드 개장 등으로 관광 인프라도 확충했다. 창원시청 관계자는 “통합 이후 문화관광적인 측면에서 풍부한 도시를 만드는 데 고민이 많았고, 그 결과물이라고 보면 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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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산시의 오늘

창원시 마산회원구에 있는 NC파크야구장 전경. /창원시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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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마산시의 오늘

창원시 마산합포구에 있는 마산로봇랜드 전경. /창원시청 제공

창원보다 박탈감이 더 큰 옛 마산

마산은 창원보다 더 뒷걸음질쳤다. 1899년 마산포 개항 이래로 부산과 비견할 정도의 도시였기 때문에 박탈감이 더 큰 편이다

마산은 산업화 초기 대한민국의 경제성장을 이끈 거점 도시였다. 정부는 저렴한 생산비용으로 노동집약적 외국인 투자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1970년 마산자유무역지역을 지정했다. 이 경제특구의 2008년 수출액은 50억7000만달러(약 5조6500억원)를 기록했다. 마산자유무역지역관리원 관계자는 “한창 땐 정말 불꺼질 시간이 없게 공장이 돌아갔다고 ‘합포만의 기적’이라고 불렸고, 팔도에서 몰려든 노동자들이 수출에 전념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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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자유무역지역

마산자유무역지역에서 대기 중인 화물차들. /연지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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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진해시의 오늘

안민고개에서 내려다본 진해 전경. /연지연 기자

하지만 최근엔 그 분주함을 느끼기 어렵다. 물건이 드나들기야 하지만, 예전에 비할 바가 못된다. 글로벌 휴대전화 시장을 주름잡던 노키아가 몰락하고 마산에 있던 자회사 노키아티엠씨가 문을 닫은 이후로 마산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2008년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수출액의 78%를 노키아티엠씨가 담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산자유무역지역 수출액 추이

단위: 억달러
자료: 마산자유무역지역관리원

마산자유무역지역의 수출액은 최근 10년새 급감했다. 2019년 기준 마산자유무역지역 수출액은 7억8500만 달러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특구 지정 50년을 넘기면서 기반시설이 낡아진 점, 인건비가 늘어난 데 따른 경쟁력 약화, 자유무역협정(FTA) 확산으로 인한 관세 이점 감소 등을 원인으로 꼽고 있다.

마산에서 나고 자란 김재현(65)씨는 지금의 마산이 낯설다고 했다. 그가 회상하는 마산은 늘 구직난보단 구인난이 있었던 곳이다. 공장이 쉬지 않고 돌아가는 통에 일손이 귀했다. 공단 정문과 후문에 있던 게시판에는 구인공고가 빼곡했고, 현장에서 직접 채용이 이뤄졌다. 김씨는 “마산과 창업이 통합하는 바람에 마산은 구도심, 창원은 신도심이 되면서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갔다”고 했다.

마산 시민들의 이와 같은 반응은 오랜 기간 깔려있던 소외감이 작용한 것이기도 하다. 마산은 1990년대 이후 계획도시 창원에 상권을 빼앗기고 인구가 유출되는 등 낙후 현상을 면치 못했다. 옛 마산시는 행정구역 통합으로 정체를 극복하고 잃어버린 성장 동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지만 통합 이후로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창원시 관계자는 “옛 마산의 명성을 되찾기 위한 ‘마산부흥 5대 전략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등 노력을 하고 있다”면서 “좀 더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으로 전망한다”고 했다.

새로운 통합·도약 꿈꾸는 창원시

지난 10년간의 통합 성적표가 미진한만큼 창원시는 더 큰 경제 도약과 지역 균형발전, 성공적인 통합을 이루기 위해 매진하고 있다.

특히 과거의 영화로움을 되찾기 위해 마산에 공들이고 있다. 대표적인 발전 계획은 ‘자유무역지역(K-FTZ) 2030 혁신 전략’이다. 산업통상자원부가 2020년 11월 20일 열린 '마산자유무역지역 50주년 기념식'에서 이를 발표했다. 마산의 강점인 기계·전기전자 산업에 핵심전략산업인 지능형 기계·제조 ICT 산업을 연계해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내용이 골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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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해신항 조감도 /창원시청

부산항 제2신항인 '진해신항' 조성도 창원시의 기대가 큰 사업이다. 창원시는 이를 통해 동북아지역 물류 플랫폼으로 발돋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제조업이 집중된 창원 경제와 항만물류산업의 결합으로 제조기업 원가와 물류비용이 절감되면서 창원 산업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은 진해신항 개발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로 생산 유발효과가 28조4758억원, 부가가치 유발효과가 22조1788억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진해신항은 2022년 착공해 3만TEU급 21선석을 건설하는 계획으로, 2030년부터 단계적으로 개장할 계획이다. 진해신항은 선석·야드 크레인까지 자동화가 도입된다. 이송영역을 포함한 전 구간 자동화도 추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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